재단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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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설립 취지문

조양(朝陽) 오일용(吳一龍)님은 가난한 농가(農家)에서 자랐으나, 역경(逆境)을 딛고 주근야독(晝勤夜讀)으로 학업(學業)을 마치며, 동일철강(東一鐵鋼)을 건설(建設)하여 실업가(實業家)로서 대성(大成)하고, 다년간 대구상공회의소 회장(會長)으로서 상공업(商工業) 발전(發展)에 기여한바 공적(功績)은 지대(至大)하였다.
오회장(吳會長)은 항상 문화창달(文化暢達)과 육영장학(育英奬學) 사업(事業)으로 유위(有爲)한 인재양성(人材養成)과 민족문화(民族文化) 진흥(振興)을 도모(圖謀)하면서도 그 뜻을 펴지 못하였다.
이제 그의 2세(二世)가 이어받은 사업(事業)이 더욱 발전(發展)함에 따라 그 유지(遺志)를 계승현양(繼承顯揚)코져 후곤(後昆)을 중심(中心)하여 친지(親知)들이 뜻을 모아 동일문화장학재단(東一文化奬學財團)을 설립(設立)하는 바이다.

1988. 12. 19
조양(朝陽) 오일용(吳一龍) 先生

재단의 설립과 현황

재단설립일 1988년 12월 19일

“역사는 과거가 아닌 미래이다”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우리의 기억을 통해 다시 살아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의 좋은 기억을 영원히 전승함으로써 우리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동일문화장학재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재단의 설립과정과 현황을 통해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조양 조일용 선생의 고귀한 뜻과 행복한 기억들을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재단의 설립

동일문화장학재단은 조양 오일용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산학협동의 촉매제 역할을 하기 위해 1988년 12월 9일 발기인 총회를 거쳐 12월 19일 자본금 4억 원으로 설립되었다. 조양 오일용 선생은 경북 상주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주근야독(晝勤夜讀)하여, 1946년 대구시 중구 북성로에서 동일농잠구사의 창업을 시작으로, 1955년 제일연마공업, 1960년 동일공업사, 그리고 1966년 동일철강공업을 창업하였다. 1974년에는 합금철 부문을 포항으로 이전하여 동일전공을 설립하였고, 1985년에는 철강부문을 포항으로 이전하여 지역산업 부흥에 큰 업적을 이루었다. 한편,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대한 상공회의소 부회장, 포항철강공담 회장, 대구시정 자문위원장, 경북 민간단체 새마을협의회 회장 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지역경제는 물론, 국가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조양 선생은 타고난 기업가 정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고결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학생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기이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대학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많은 어려운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이 여러 번 있었고, 1975년부터는 경영하던 사업체의 직원들을 돕기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항상 어려운 사람들의 고민에 마음 아파했으며, 문화 창달과 육영사업의 큰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불의의 병환으로 생전에 이것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는 조양 선생의 절친이셨던 모산 심재완 선생의 일기장에도 잘 드러나 있다.

“오전 在家 <東一文化論叢>의 표지를 쓰다. 隸書로 가로 세로를 쓰다. 동일문화장학재단의 취지를 생각하고 故人이 된 東一全業主 吳一龍씨에 이 사업을 권하던 일, 그가 병석에서 이 사업을 못하여 안타까웠던 일을 생각하며 父業을 이어받은 舜澤군의 착실한 경영을 생각하며 본 사업의 발전을 기원하며 여러 차례 고쳐 써본다.” 모산 선생 1992년 3월 9일 일기장에서 발췌

조양 선생의 이런 고귀한 정신을 잇기 위해 조양 선생의 2세들과 지인들이 1988년 12월 19일 ‘동일문화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장학사업과 교육문화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다. 이는 조양 선생의 기업가정신과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귀한 뜻을 전승하는 것으로 유한한 인간이 죽음을 넘어 ‘영원히 살아가는 길’에 대한 효의 사회문화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